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포항 스틸러스 (문단 편집) === 포항 유스, '화수분 축구' === '''K리그에서 최초로 유소년 시스템을 구축했고, 자타공인 K리그 최고의 유소년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다.''' 구단 홈페이지에는 '2003년 유소년 시스템 도입'이라고 하긴 하는데 실질적으로 유소년 시스템이 정착된 시기는 포철공고 축구부가 창단된 1993년이고 본격적인 포항 스틸러스 산하 유소년 구단으로서의 관리가 2003년부터 이루어졌다고 보는 게 맞다.[* 1993년 이전에도 경북 지역의 여러 중·고·대학교와 협약을 맺어 유소년 시스템의 골격을 갖추기도 했다. 이것이 전면적으로 개편된 것이 1993년이다.] [[노태경]], [[이동국]], [[신화용]], [[황진성]], [[김승대]], [[강현무]] 등이 이 시스템을 거친 대표적인 선수들이고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희대의 축구 천재라 평가받던 [[김병수(축구인)|김병수]][* 초대 감독인 한홍기 감독이 김병수가 중학생일 때부터 애지중지 키워왔다. 심지어 1군 선수단 훈련에도 참가시켰을 정도.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시스템을 생각하면 꽤나 파격적인 교육이었다.]도 고질적인 무릎 부상 때문에 프로 데뷔를 못 했을 뿐이지 포항 유스 출신이다. 이렇게 1990년부터 체계를 다진 포철초-포철중-포철고로 이어지는 '''유소년 클럽'''의 힘으로 꾸준히 선수들을 발굴하며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는 상위권 팀들에 비해 전혀 밀리지 않는 성적을 보여주기도 했다. 8~90년대에는 [[박태준|창립자]]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국가대표급 선수들과 K리그 최초로 용병을 영입하는 등 나름대로 부자 구단이었으나[* 이때 유소년 시스템에 투자해 둔 것이 [[신의 한 수]]가 되었다.], 모기업인 포스코가 상장을 하게 되고 민영 기업으로 변화함에 따라 외국 주주의 비중이 50%를 넘어선 2000년대 이후로는 모기업의 확실한 지원을 받는 구단들에 비해 항상 부족한 예산에 시달리게 된다.[* 이는 모기업의 사업 영역과도 연관되는데, 포스코의 주력 사업은 철강 제조업으로 [[B2B#s-2]]를 위주로 한다. 따라서 축구단 운영으로 인해 얻는 가장 큰 이익인 홍보 효과에 대해 별달리 큰 영향을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유소년 시스템은 모기업의 지원이 확연히 줄어든 2000년대 포항에 큰 힘이 되었고, 결국 2013년에는 선수단에 외국인 선수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스쿼드의 절반 이상을 유소년 시스템에서 배출한 선수들로 채우고 구단 최초의 더블([[K리그1|K리그]]+[[FA컵(대한민국)|FA컵]])을 달성하기도 한다. 유망주 위주의 선수단 구성도 그렇고, 화려한 패스 축구의 팀 컬러도 그렇고, 여러모로 K리그의 [[아스날 FC|아스날]]이라 불리기도 한다. 심지어 [[한준희]] 축구 해설위원은 이런 포항을 아스날에 빗대어 '포스날'이라 칭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4 시즌에는 [[포항제철고등학교 축구부|U-18 유스 팀]]이 '알 아인 인터내셔널 U-17 토너먼트 2014'에서 [[맨체스터 시티]] 유스를 2:1로, [[UAE]] 17세 대표팀을 4:1로 대파하는 기염을 토했다.[[http://www.youtube.com/watch?v=MNchP6vEoy0|경기 영상]] 하지만 슬프게도 자유 계약 제도의 최대 피해자가 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유소년 시스템을 통해 브라질로 축구 유학을 보낸 [[박주영|한 축구 영재]]는 K리그 입단 시 홀연히 [[FC 서울|다른 팀]]으로 가버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전부터 선수 [[하이재킹]]에 불만이 많았던 [[시민구단]]들도 폭발한 데다가 [[드래프트]] 반대 측에 서 있던 포항까지 드래프트 찬성으로 돌아서면서 드래프트 제도가 부활해버렸다.[* 그러나 드래프트 제도에도 맹점이 있다. 유스 출신 선수 우선 지명이 4명뿐인지라 그 4명을 빼면 다른 팀에 뺏기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없는 돈 쪼개서 애들 키웠더니 남 좋은 일만 시킨 꼴. 거기다 우선 지명한 선수들도 잘 키워 놓으면 돈 많은 수도권 구단들이 채가는 데다, 선수들도 인프라가 좋은 수도권으로 가려 하니 포항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속상할 따름이다. 그나마 2010년대 들어서는 각 구단들도 유스에 신경쓰고, 대형 구단들이 유스보다 검증된 외부 영입에 더 신경을 쓰면서 적어도 포항이 애지중지 키운 유스들이 털리는 일은 줄어들었다. 그리고 포항 역시 외부 영입은 줄여도 유스 선수들은 확실히 잡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여 많은 포항 출신 유스들이 [[포항 스틸야드]]에 입성하고 있다. 그리고 드래프트 제도가 다시 폐지되고 자유 계약제로 전환되면서, 이런 일은 더이상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2014년 [[황희찬|6년 동안 공들여 키운 선수]]가 고등학교 졸업 후 우선 지명을 받아 포항에 입단할 예정이었으나, 규정의 빈틈을 이용해[* 한국의 프로축구단에서는 한국 특유의 학원 축구 시스템과 관련 규정으로 인해, 구단 측이 유소년 선수와 프로 계약을 체결하여 선수에 대한 소유권을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돌연 [[FC 레드불 잘츠부르크|해외 팀]]으로 이적해버리고 만다. 물론 법을 어긴 것은 없기 때문에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는 없다. 하지만 포항뿐만 아니라, 한국 축구계에서도 이번 일은 꽤 충격적인 일로 다가온 듯하다. 이런 와중에 [[백승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SNS]]에 [[http://www.fmkorea.com/files/attach/new/20141219/3674493/51371259/88987112/3fc32f41ef637124a0260f4a17aa4dae.png|묘한 글을 남기도 했다.]] 정작 선수 본인은 별로 반성의 기색이 없는지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413&aid=0000075044|“축구선수로 성공하려면 유럽 나가야한다, 후회안해”]]라는 발언으로 축구 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들었다. 클럽 산하 유스는 아니지만 우선 지명한 선수들을 포항 유소년 팀을 지도했던 [[김병수(축구인)|김병수]] 감독이 있는 [[영남대학교]] 축구부에 진학시켜 경험을 쌓게 한 다음 프로로 데뷔시키기도 했다. [[신진호]], [[이명주]], [[김승대]], [[손준호(축구선수)|손준호]], [[김준수(축구선수)|김준수]], [[정원진]], [[이상기]] 등이 이런 과정을 거쳐 포항에 데뷔하여 활약했다. 김병수 감독이 프로 감독으로 옮긴 이후 [[영남대학교]]를 거치는 경우가 많이 줄어들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